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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보신각 종 타종하기

by 태풍이분다 2024.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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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종 타종하기

2019년 3월 3일에 사랑하는 딸이 결혼을 했다. 딸이 결혼하여 집을 나가니, 딸이 결혼한 것은 정말 좋은데,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하면서 쓸쓸한 마음으로 지내는데, 친한 지인이 2019년 4월 18일에 보신각 종을 타종하는 행사에 당첨이 되었다고 같이 가자고 전화를 한다. 처음에는 좀 어리둥절했으나, 내가 보신각 종을 타종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 

 


 
보신각 :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전통 2층 한옥 누각으로, 보신각종을 걸어두기 위하여 만들었다.
 
보신각동종 :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1m, 입지름 2.28m. 1985년까지 종로 보신각에 걸려 있어 제야(除夜)의 종으로 사용되었던 종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 보존 중이다. 원래는 1395년(태조 4) 종로 운종가(雲從街)에 종각을 짓고 권근(權近)이 찬문(撰文)을 쓴 대종(大鐘)을 매달아 조석(朝夕)을 알렸으며, 다시 1468년(세조 13)에 대종을 주성(鑄成)해 달았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지금의 보신각종은 돈의문(敦義門: 西大門) 안에 있는 신덕왕후 정릉(神德王后貞陵)의 능사(陵寺)에 있었던 것이다. 이 종은 정릉사(貞陵寺)가 폐사되면서 원각사(圓閣寺)로 옮겨졌다. 중종 때 김안로(金安老)가 이 종을 숭례문(崇禮門)으로 다시 옮기려던 것을 임진왜란 후인 1594년(선조 27)에 종루(鐘樓)에 걸어두었다. 그 뒤 이 종루가 1869년(고종 6)에 불타고, 1895년(고종 32)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됨에 따라 이때부터 보신각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옛 보신각 동종 [舊普信閣銅鍾]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보신각 2층에서


 
내가 젊은 시절인 1970년대에는 종로와 명동이 제일 번화가이고, 많은 사람들이 만남의 장소로 종로 보신각, 종로서점, 빠이로트 만년필 등 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교보문고는 조금 후에 생긴 것으로 기억이 되고,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약속시간이 지나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던 시절이다.
 
전화번호 30개 정도는 외우고, 전화번호가 적힌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다. 
 
우리 3명은 오전 11시에 타종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서 출발하여, 1호선 전철 종각역에서 내려, 보신각 앞에서 일행을 만나고, 보신각종 타종을 주선한 지인에게 감사하다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시간이 돼서 보신각 2층에 올라가니 아주 기분이 좋고, 보신각 2층에서 광화문 방향을 바라본다. 옛날 조선시대의 복장을 한 사람이 종을 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준다. 보신각 종을 만져 보고, 문양도 자세히 살펴본다. 보신각 종 맨 하단에 손을 넣어서 만져보니 종의 두께가 30센티는 되는 것 같다. 이렇게 크고 웅장한 종을 내가 타종하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보신각 종 타종



3명이 종을 치는 나무에 손을 얹고 타종 연습을 몇 번 하고, 드디어 종을 친다. 셋이 합심하여 종을 치니, 종에서 아주 엄청난 진동이 일어나면서 그것이 소리로 변하여 울린다. 그때의 느낌은 너무 황홀하고 좋았다. 타종을 마치고 보신각 종에 귀를 대고 들으니 진동이 계속 일어난다. 아 너무 멋지다. 누가 이런 명품을 만들었을까? 
 
 
더 치고 싶었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보신각 2층에서 종로 일대를 바라본다.
 
보신각 종은 매년 마지막 날에 새해를 맞이하는 제야의 종으로 타종을 한다. 그날에는 아주 많은 인파가 보신각에 모여서 새해 희망을 기원하고, 방송국에서도 생중계를 한다. 
 
송구영신 :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
 
보신각 종을 타종하는 사람은 서울시장, 서울시의회장, 서울지방경찰청장, 서울시교육감 등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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